< 빈곤의 해법 >

사람은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걸까. 아니면 가난하기 때문에 머리가 나빠지는 걸까.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1988년생으로 올해 나이 서른이다. 그는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해법>(2017)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워싱턴 포스트'와 '가디언'이 이 책으로 특집 기사를 다룰만큼 논쟁적인 책이기도 하다. 그는 테드(TED) 강연에 출연해 2017년 테드 Top10에 오르기도 했다. 테드팀은 브레흐만을 일컬어 '유럽을 대표하는 가장 전도유망한 젊은 지성'이라고 표현했다.

브레흐만의 사상은 영국에서 신자유주의를 이끌던 마가렛 대처의 말 한 마디에서 출발한다. "가난은 개인적인 약점과 같은 말이다." 이 말은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본인이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브레흐만은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고 빈곤은 가난한 사람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센딜 멀레이너선'과 '엘다 샤퍼' 교수의 공저 <결핍의 경제학>에서 '사람은 가난할 수록 I.Q가 떨어진다'는 연구에 흥미를 가졌다.

멀레이너선과 샤퍼 교수는 인도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농부들을 상대로 I.Q 테스르를 했다. 농부들은 1년에 한 번 수확을 하는데, 테스트는 수확하기 한 달 전인 가장 빈곤한 시기와 수확을 마쳐 주머니가 두둑한 시기, 이렇게 두 번 했다. 그런데 빈곤한 시기보다 풍요로운 시기의 지능이 10%나 향상돼 있었다. I.Q는 선천적인 게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은 가난할 수록 생계에 대한 걱정으로 그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수리능력, 인지능력이 떨어져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브레흐만은 이 실험의 공동 연구자였던 샤퍼 교수를 만나 다음과 같이 물었다. "교육방식을 바꾸면 좀 나아질까요?" 이에 샤퍼 교수는 "교육을 바꾸면 안바꾸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빈곤을 해결하지 않고 교육만 바꾸는 건, 수영하는 법만 가르쳐주고 망망대해에 던져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죠."라고 대답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가지세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세요"라는 식의 심리치료는 그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캐나다 도핀이라는 도시에서 1974~1979년까지 5년 동안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을 했다고 한다. 최저소득을 보장해준다는 의미에서 ‘민컴(MINCOM)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그런데 집권당이 보수당으로 바뀌면서 이 통계 자료는 그냥 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25년 후 경제학자인 에블린 포르제에 의해서 민컴 프로젝트는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다. 자료는 자그마치 2천 개나 되는 박스에 보관돼 있었다. 포르제 교수는 박스의 자료를 모두 검토한 결과 매우 놀라운 통계 자료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자료에 의하면 기본소득 실시 이후 마을 주민들의 I.Q가 향상돼 있었고, 병원 입원률도 8.5%나 감소했으며, 가정폭력도 현저하게 줄어 있었고, 정신병 환자도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게을러져서 일을 안할거라는 선입관은 기우에 불과했다. 주민들이 일을 안했던 시기는 공부를 더 하거나 아이를 낳기 위해 쉬었던 때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기본소득은 저출산 해결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브레흐만은 우리가 가난하게 사는 건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독설을 날린다. "부자인 우리는 가난에 대해서 무엇이 최선인지 아는 척 하는 걸 제발 멈춰야 된다. 얼굴도 본 적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줄까, 교육을 고칠까 이런 동정적 시선도 멈춰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온정주의적 관료들과 학자들도 다 없애버려야 한다. 그럴바에는 그냥 그 관료들과 학자들이 받는 월급을 빈민들에게 나눠줘라."

브레흐만이 말하는 핵심은 '빈곤을 없애자'는 것이다. 돌려 말하지 말고 빈곤을 해결할 직접적인 방법을 찾아나가자는 것이다. 그게 기본소득이든 토지공개념이든 빈곤을 없애면 먹고 살기 위해 쏟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난한 사람들이 소비하는 가장 큰 에너지는 '먹고 살자'에 있다. 그리고 내 자식도 좀 '먹고 살자'라는 것이다. 빈곤이 사라지면 가난은 대물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레흐만이 테드 강연에서 했던 마무리 발언이다. "마틴 루터 킹은 '나에게는 악몽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죠. 그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꿈이 있다고 말하려고 합니다.... 빈곤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해답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연구 결과도 있고 증거도 있고 방법도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안하고 있을 뿐입니다."